SCHUBERT PIANO SONATA NO.19, 21 : Sviatoslav Richter by 마르땡


초등학교 깨끼 시절, 엄마가 태교용으로 구입해 놓고 한번도 안 들었다는 클래식 카세트 테이프 더미에서 슈베르트의 21번 소나타를 처음 발견했던 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. 작곡가라고는 피아노 학원에서 한창 배우던 바흐와 모차르트뿐이었던 초글링에게는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였다. 신기하지. 들을 때 마다 저절로 눈이 감겼는데 정신만은 말짱하더라. 누구의 말처럼, 수평선 너머 뚜벅뚜벅, 끝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 생각이 났다. 아하, '무궁동'이 이런거구나!

단조로운 선율에 조금만 연습하면 나도 뚱땅거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절뚝절뚝. 어찌어찌하여 전악장을 건드려보기는 했고 간신히 미스터치 없이 칠 수 있게 되었을 즈음, 그렇다면 이제는 악상을 완성할 차례다 싶었다. 백방으로 연습하기를 기 수 백번. 하지만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악장 첫 소절조차 맛깔스럽게 치지 못한다. 양손으로 한꺼번에 여섯개의 음을 짚어야 하는데 최대한 여린 소리를 내라는 주문이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. 그저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놀리고 있을 뿐. 아무래도 절절한 마음 없이는 안 되는 건가 보다.

가을 밤, 간만에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다. 물론 표지부터 고즈넉해서 좋은 리흐테르반으로. 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고지식하지도,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그의 작품이지만 뿜어져 나오는 온기만은 가장 담뿍하기 때문에 알싸한 가슴을 데워주기 딱 알맞다. 울적하고 속상한 일 있어 토로하면 한 없이 포용해 줄 것만 같은 그런 느낌.

잰체하지 않는 슈베르트가 나는 너무 너무 좋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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